남편인 내담자
남성전문상담소가 아님에도 내가 운영하는 상담소에는 유난히 남성 내담자가 많았다.
몇 년 전 아내로부터 이혼 소장을 받아들고 나서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조차 인지가 되지
않았던 40대 초반의 남편인 내담자가 있었다.
내담자가 분노하며 보여준 아내가 보내온 이혼 소장에는‘을’의 위치에 놓인 아내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
겨져 있었다.
남편인 내담자는 오로지 자신의 위치가 ‘갑’이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분법으로만 생각하였고, 상담자도‘을’의 자리에 놓으려 하였다.
첫 상담에서 이러한 내담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 내담자에게는 상담자의 권위를 확보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를 위해 상담자는 “당신이 지금 상담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이혼 전문변호사가 해결해 줄 문제이다.
나는 당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안전하게 잘 견디게 도와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에게 상담을 받을 것인가?”하고 물었다.
상담자의 역할에 대해 명료화하자 그는 내담자의 위치에 섰고 상담이 시작되었다.
그는‘삶의 도구는 오로지 권력’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대한 탐색을 비롯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
구성하고 이분법의 구도에서 하차하는 과정에서 저항이 거세기도 하였다.
상담초기에는 무너진 자신만의 세계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 성실하게 상담에 임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이 왜 그렇게 권력에 집착했는지, 아내와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면서 통곡하는 울음을 한동안 쏟아내었다.
상담이 종결될 즈음에는 아내만이 자신의 변화를 확인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서 아내와 꼭 다시 결혼생
활을 잘 해보고 싶다는 간곡한 바람을 가진 채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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