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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심리치료

문화와 상담

  • 관리자
  • 2019-04-12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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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상담

 

[상담자]

창세기2장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산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20여 년 전 학부 때 논리철학교수님이 “나는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로 하여 아담과 하와를 내쫓지 않아서 에덴동산과 같은 곳에 평생 살아야 했다면 아마도 탈출을 감행했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그곳에서는 재미없어 살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에 많이 공감했었다. (지금 70대의 그 교수님은 정년 후 문학으로 전향하셨다.)

그리고 이번 학기 초 교수님께서 같은 구절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만약 선악과를 베어 물었다면 뱉어 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상담자의 과제”라고 첫 수업을 시작하셨다.

무엇인가를 또는 어느 곳으로 도달하기위한 쉼 없는 열정적인 삶에서 전향하여 구도자의 길로 들어선 이 길목에서 나는 이곳까지 나를 건네준 뗏목을 밀어버리고 마태복음16장24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는 말씀처럼 내가 왜 상담자가 되려고 했었는지의 이유마저도 버리고 상담자로 살아가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마태복음 11장25절; 천재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내용은 상담자 내담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셨다는 의미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과 ‘어린 아이들’의 의미를 일반적인 의미가 아닌 살짝 뒤틀은 표현으로 영화 'Man from Earth'의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미국 한적한 지방의 대학 교수인데 10년 동안 재직했던 직장을 떠나면서 동료들과의 송별파티에서 자신이 사실은 1만4천 년 전부터 살아왔다고 고백을 한다. 동료교수들은 나름 자기분야에서 전문가여서 사실여부를 검증하려고 애를 써보지만 그 지식은 3,4십년동안 쌓아온 지식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 알 수 없는 세월동안 겪어왔던 수많은 일(역사속의 장면)들을 자신의 지식과 경험 내에서만 인정하거나 부정하거나 하는 에피소드들이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내가 아무리 공부하고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도 고작 100년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부모나 가르치는 이들은 마치 그 작은 경험이나 지식들이 자신만의 가진 유일한 세상을 재는 잣대라고 생각하고 아무 곳 어느 때든지 들이대고 그것에 맞지 않으면 비난하고 빈정댄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에 빗댄 예수님의 말씀인 것으로 이해된다.

 

[내담자]

마태복음12장33-34절;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요즘 모녀 내담자를 상담하고 있는데, 엄마는 독실(또는 맹신)한 기독교 신자이고, 딸의 이름도 예은이로 지었다. 그런데 지금 17살인 딸은 6년 전부터 엄마한테 욕을 하고 때리기도 하는 상황이다. 위 성경구절 중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의 대목을 떠오르게 한다. 엄마내담자가 자주 사용하는 주장은 ‘성경에 부모에게 효를 하지 않는 자식은 지옥간다’라는 내용이다.

고린도후서12장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을 거듭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강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상담]

마태복음5장3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팔복 중에 첫 번째 말씀이다. 이 말씀을 불교이론 중론 ‘공’의 개념으로 풀이해 보자면, 상담자는 원래 상담자가 아니고(즉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내담자를 만나는 그 순간에 상담자가 되고, 내담자 역시 그러하다. 마치 오른손이 혼자서 오른손이 아니고 왼손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상담은 ‘가난한 마음’ 즉 ‘공’이 찰나생, 찰나멸하는 현상인 것이다. 상담자가 어떠한 분별 잣대로도 내담자를 재단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인정할 수 있으려면 꽉 차인 마음의 콘크리트 바닥을 확 걷어 치워야 한다.

 

요한복음 14장 26,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의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마태복음11장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 두 성경구절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상담목표로 정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 모두는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내려놓을 줄 모른다. 예수님이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또 나의 쉽고 가벼운 멍에와 짐을 바꾸자’고 해도 우리는 그렇게 하기가 정말 쉽지가 않다. 최근의 내담자 중 25세의 여성을 상담했는데, 이 내담자는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심리종합검사를 해 달라고 울면서 요청했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친구들도 모두 자신이 심각한 상태의 마음병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알았으니 일단 왜 그렇게 우울한지부터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고 하면서 검사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필요하면 그때 하면 된다고 하면서 5회기를 예정하고 상담을 시작했는데 4회기 마치고 상담을 그만 해도 괜찮겠다고 했다. 나도 역시 동의했고 상담을 종결했다. 이 내담자의 상담핵심은 ‘당신은 문제가 없다’를 증명해 보여준 상담이었다. 자신이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무거운 짐과 멍에를 쓰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그 짐에 명찰을 붙여서 내려놓을 것과 지고 있어야 할 것을 구분해 주었을 뿐인데 내담자는 밝은 표정으로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자신의 자기보다 훨씬 중증이라 불리는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만약 내가 이 내담자가 요구하는 대로 종합심리검사를 실시해서 마음의 병명을 붙여주고 상담을 시작했더라면 이 내담자는 아마 그 증상에 맞추어서 계속 생활하고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후기]

형용사나 수식어로 장식되지 않으며, 무엇을 강요받거나 또는 어떤 것을 박탈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는 참으로 행복하고 좋을 것 같다.

퇴색한 콘크리트더미를 확 걷어치워 버리면 그 밑의 여린 초록색의 힘없는 풀잎이 고개를 숙인채로 있다. 그렇게라도 존재하려 애쓰는 그 생명을 그대로 존중하고 햇볕과 공기와 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상담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토록 성문승이고자 했던 내게 빈 탁발그릇이 들려졌을 때는 정말 ‘주여 왜?’를 외쳤었다. 굳어진 목뼈가 우두둑 소리와 함께 꺾이며 내담자와 눈 마주쳐지면서 나는 그 해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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