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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치료 받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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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8 03: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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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정]
 
선천적으로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4살 무렵에 아버지의 형제가 낳은 자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나서인지는 몰라도 유치원 입학후에는 친구가 거리에서 보고 인사를 한다든가 아는 척을 하면 겁을 먹고 피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고 도망가고는했습니다. 바깥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어머니 지갑에서 돈을 가져가는 등의 도벽이 잠깐 있었구요. 도벽 문제는 일이년 정도 지속되다가 말았던거같아요. 당시에는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답답한 마음뿐이었어요. 사람들로부터 얻는 불안감, 긴장감, 공포감 때문에 순간은 괴로운데 유일하게 행복하고 살아숨쉬고 저답게 만들어주는 건 어머니의 도움으로 시작하게된 피아노였습니다. 피아노가 제 친구였죠. 아무 말을 하지 않지만 흰색 건반과 검은색 건반에 손을 얹어 연주하면, 연주하는 소리가 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당연한건데 전 제 세계에 갇혀있었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어떻게 친해져서 다가가야하는건지 방법조차 몰랐어요. 성폭행 당하고나서 걸린 질염이라는 질병때문에 유치원때부터 고등학생이 될때까지 혼자 고민하면서 울고 공포와 무서움에 힘들어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혼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울었던 날이 많았죠. 어머니는 알고계셨지만 어머니도 이미 우울증이셨고 속으로 삭히셨다고 해요. 아버지가 책임지지않고 넘어가셨기 때문에요. 매년 학교폭력의 타겟이 되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6학년때는 결국 등교거부 한달동안 한적도 있었죠. 컴퓨터 게임만하고요. 사춘기를 겪는 오빠와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자주 싸우싸웠는데, 격해지게 싸울때마다 아버지에게 오빠는 칼을 들고는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반발심이 생기는 나이가 되면서 그대로 행동을 하고 있더군요. 정규교육과정을 받기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수많은 인원이 채워진 교실에서 밥을 먹는것도 의식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의 불안감, 조금이라도 학교에 지각할것같으면 안될거같은 강박관념도 있었고요. 수업시간에 꼿꼿하게 허리를 피지않으면 안될것 같았어요.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셨습니다. 근데 저는 말 잘듣는 척 삐딱하게 나가고는 했었죠.초등학교 중간,기말시험때는 답안을 수정하고 고쳐가면서까지 평균점수를 높이곤 하다가 친구들에게 약점으로 잡혀 "너 선생님한테 일러받친다. 돈 내놔." 삥 뜯기는 등. 중학교 때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적을 높여가곤했었어요. 성적을 올리는 제 모습이 만족스럽다가도, 기름과물처럼 늘 사람들 사이에서 겉도는 인간관계, 친밀감 형성 방법을 모르고 성장해가는 제가 답답하고 싫었습니다. "왜 나는 나로부터 갇혀 나오지 못하고있는가. 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가." 잘 보이려고 하다보니까, 저를 좋아해주는 친구가 생기면 그 친구에게 매달리게되더군요. 한 친구가 껴들기 시작하면 자잘한 거짓말이나 이간질을 하면서까지 친구사이를 갈라놓는등. 잘못된 우정을 형성하고 있었어요.
 
전 동성애자입니다. 성폭행 후유증으로 비롯된 성향은 아닌듯하고, 어릴적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 힘이 되주고싶고, 그런 어머니를 지켜주고 싶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가슴 설레여본 성별이 여성이었구요. 단짝 친구였습니다. 우정으로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던것같은데 어느날부턴가 그 이상으로 제가 그 친구를 생각하고 좋아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인지는 하고 있다가 중학교1학년이 되서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는 했습니다. 학교 생활에서 아무도 못 사귀고 겉도는 저에게 같은 동질감으로 우정을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어요. 
 
[현재 문제점]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전에 저는 제진로에 대한 설계의 밑그림이 그려져있었어요. 피아노와 노래, 기타, 작곡을 배워서 실용음악과에 가자. 근데 공부만하다가 무작정 음악을 하고싶다고하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반대만하고 무시하셨어요. 반발심에 저는 아무것도 안하고있었죠. 공부도 포기하고, 아무 의지없이 3년을 다녔어요. 혼자 음악 공부를 해보려고 밤새 컴퓨터를 하면, 아버지는 윽박지르며 저에게 폭언과 푹력을 휘두르셨어요. 한 번은 새벽 2시 평일이었죠. 전 공부는 못해도 야자와 결석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날도 10시반이 되서야 집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키고 음악하는 친구들과 메신저로 연락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있었어요. 유튜브를 통해 컴퓨터음악프로그램 다루는법 등을 배워가고있었고요. 근데 부모님은 초등학교시절 컴퓨터중독이 연상되서 자꾸만 뭐라고하셨죠. 음악은 마약같았어요. 인생에서 한번밖에 오지않을 그런 꿈, 옛날의 저는 어른들이 꿈을 물어볼때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그럴싸한 꿈을 갖다댔어요. 아나운서, 치과의사. 치과의사는 어머니의 치아가 좋지 않아서 되고싶다고 했던거같아요. 음악은 제 신념이 살아있는 꿈이었죠. 그렇게 3년이 흐르고, 고교3년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트러블이 계속 잦아지게되면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때도 이간질을 했고 뒷담화를 했기 때문이었어요.
잘못된 소문이 퍼진것도 있었구요. 그래서 졸업때까지 힘들어하고, 사람들이 저를 뒤에서 욕할까봐 무서워하며 말조차 사람 눈치를 보고 눈도 제대로 못쳐다보며 말하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채로 대학교에 성적 맞춰 입학을 했고, 1학년 5월에 말도없이 학교에 나가지 않아 제적상태에요. 전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있었죠. 집에만 갇혀있었어요. 스물세살 8월까지. 친구도 없고 오직 저 혼자 집에서 핸드폰만 만지고 누워만 있을줄 아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되어있었어요. 스물셋 동성애 성향의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를 좋아하게되면서 저는 사는곳까지 옮기며 자립을했어요. 근데 그 친구가 느끼기를 저는 항상 뭔가 숨기는거같고 저를 드러내지않고 뭐 하나 들킬까봐 조마조마하고 자잘한 거짓말을 자기한테 계속 하는거같아서 신뢰가 안쌓이는거같다고 하더군요. 이런 절 고쳐나가고 싶어요. 저도 자잘한 거짓말을 하고 절 포장하는 행위를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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