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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상담이야기) 대상관계이론과 영화 '케빈에 대하여'
2018-11-25 18:37:26
고도심리상담 조회수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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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부부상담 대전심리상담

 

    대상관계 이론

 

        자기대상은

      -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거울 자기대상(mirroring self object)

 

      -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힘이 있고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 하려고 찾는 이상화 자기대상(idealizing self object)

 

      - 부모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끼길 원하는 쌍둥이 자기대상(twinship self object)이다.

 

  도널드 위니콧은 '멸절충분히 좋은 엄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아이는 태어났을 때 자아라는 개념을 아직 가지지 못한다.

 

- 엄마와 자신은 하나의 존재였으며 자신을 인식하기 전에 상대인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던 아이가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한다.

 

- 멸절을 느끼는 이유는 아직 독립된 자기가 되기 이전에 정서적, 육체적으로 한

 

  몸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육체적인 분리를 인지하게 된 상태에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 아직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의 계속 보호받고 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분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여겨지는 공포로 다가온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해

 

 

      - '안아 주기(holding)',

 

      - '다루어 주기(handling)',

 

      - '대상 제시(object-presenting)'

 

      - 안아 주기는 신체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며, 대상제시(object-presenting)는

        엄마가 외부 세계를 유아에게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 만약 이때 아이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경우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자기'를 만들게 된다.

 

- 참과 거짓은 도덕적인 질서의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본 기질을

 

  충실히 따르느냐의 의미이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는 대상관계 이론 중 위의 내용을 선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케빈의 엄마 에바는 유명세를 타는 탐험가로,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살다가 케빈을 임신하게 되었다. 원하지 않은 아이를 가진 임신기간은 불행감으로 이어지고, 케빈이 태어나자 가슴으로 끌어안지 못한다.

  케빈의 울음소리를 견디기 어려워 차라리 공사장의 소음 한 가운데 케빈을 태운 유모차와 함께 한동안 서 있기도 한다.

  좋은 엄마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놓여 날 수도 없고,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없는 기괴한 양육의 시간은 케빈에게 ‘거짓 자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사건들을 쌓이게 한다.

  영리한 케빈은 엄마와 있을 때만 이상행동을 하고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는 밝은 얼굴을 하여, 엄마와 아빠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대상은 모두 망가뜨리기로 작정을 실행하였고, 엄마가 동생을 낳고 자기에게와는 다른 애정을 쏟는 모습에 동생의 눈을 실명시키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믿었던 아빠마저 여동생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아빠도 적으로 생각한다.

  설상가상 부모가 이혼하는 협의 과정을 듣게 되면서, 16년 동안 쌓인 분노를 폭발시킬 사건을 계획한다.

  그리고는 엄마의 사랑을 유일하게 교감한 순간에 읽어주었던 동화책 속의 주인공 로빈훗이 되어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활을 쏴서 많은 학생들을 희생시킨다. 아빠의 사랑을 빼앗아 간 여동생과 자신을 배신한 아빠도 케빈의 활에 희생되었다.

  에바는 동네사람들의 온갖 협박과 폭력을 감내하며 마을을 떠나지 않고, 케빈의 면회를 다닌다.

  케빈이 18세가 되어 성인 교도소로 이감되는 날 엄마와 마주한 자리에서 “도대체 왜 그랬니?”라고 묻는 엄마의 질문에 케빈은 “무엇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케빈의 마지막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엄마가 자신에게 소중했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오로지 케빈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케빈을 가슴 깊이 끌어 안아준 시간들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캐빈은 대상관계의 무의식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전개에서는 전자의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느껴진다.

 

  “인간은 엄마로부터 진정으로 사랑받지 않고는 결코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게 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