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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과 융의 무의식 고찰

  • 고도심리상담
  • 2019-05-06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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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

 

불교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감각적 기관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앞의 다섯 가지를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여섯번째의 식(識)을 제6 의식이라고 한다.

 

전5식은 자체로서 판단·유추·비판의 능력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다만 ‘나’라는 주관이 외부의 객관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일 따름이다.

전5식은 제6 의식에 의하여 통괄되며, 자신이 수집한 갖가지의 정보를 이 제6 의식에

보고하는 기능을 가졌다.

 

제6 의식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존재인데, 그 단계는 다음과 같은 셋으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제6 의식, 둘째가 제7 마나스식(Manas識), 셋째가 제8 아뢰야식이다.

현대심리학에서의 구분방법에 따르면 제6식은 의식의 세계이며, 제7식과 제8식은

무의식의 세계에 비견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근원적인 마음을 아뢰야식이라고 보았다.

 

아뢰야식이라는 무의식의 바다는 모든 종자(種子)를 갖춘 가능성의 바다이다.

(참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융의 무의식

 

인간은 문명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세월들을 거쳐 서서히,

그리고 힘들여 의식 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가 온전히 완성되기에는 아직은 거리가 멀다.

저 안개와 같은 인간 본성의 허다한 부분이 아직 어둠에 쌓여 있다.

그 자아의 세계는 빛이 닿지 않는 무한한 자기의 세계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한 세계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은 자연이 획득한 매우 새로운 것이어서 그것은 아직도 실험적 상태에 있다.

실로 의식은 불완전한 기능이다.

이렇듯 인류는 험난한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자아의 세계를 열어간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아는 끊임없이 자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인류는 무의식의 힘에 의해 이끌리고 있고 무의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조 : 칼 구스타프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

 

 

필자가 방대하고 심오한 불교 ‘유식학의 아뢰야식’과 ‘칼 융의 무의식’을 감히 논하기는

두려운 일임이 자명하지만, 두 이론 사이의 접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아뢰야식 이론은 오식(안이비설신)이 바탕이 되어 아괴야식에 도달되는 지점까지의 과정과

그 작용에 대한 탐구이다.

 

융의 무의식이론은 융이 임상 장면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치료의 과정에서 발견한 인간의 선험성(태어날 때 백지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의 지점에서

탐구가 시작된다.

그래서 융은 원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식의 개성화라고 일컫는다.

 

아뢰아식은 4~5세기 무렵에 활약한 무착과 그의 동생 세친에 의해 발전된 유식학이론이고,

무의식 이론은 20세기 초 프로이드에 의해 발견되고 이후 융은 무의식을 또 다른 방향에서

발전시켜 나갔다.

 

프로이드의 무의식 이론과 달리 융의 무의식에 대한 인식은 아뢰야식과 유사성을 띄고 있는데,

융이 유식학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세월과 공간을 뛰어 넘어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는 최근의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으로

미지의 영역이 탐구되고 있다.

 

필자는 상담의 장면에서 석학들의 위대한 연구가 내담자들을 돕는데 얼마나 유용한

‘인간의 한 길 마음속’을 이해하는 도구로 쓰여지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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